정신건강 블로그

수동적 공격성: 회피형 애착 유형이 흔히 보이는 용기 없는 몸부림!

권혜경 박사

image 주말에 K씨는 모처럼 가족들과 나들이 계획을 세우고 차를 몰고 A 공원으로 향했다. 운전을 하다 보니 A 공원으로 가는 길이 차도 막히고, 그쪽으로 가면 저녁에 자신이 좋아하는 식당에 가는 것이 불가능할것 같아 행선지를 B 공원으로 바꾸었다.

한참을 가다 행선지가 바뀐 것을 눈치챈 아내는 화를 내며 늘 이 모양이라고 아이들 앞에서 K씨에 대한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고 그것이 싸움으로 번져 결국은 화가 나서 공원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계획의 변경은 있을 수 있는 일인데, K씨의 부인은 왜 그렇게 화를 낸 걸까? 그건 바로 행선지를 바꾸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A 공원에 가는 것보다는 B 공원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K씨가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을 설득하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모든 의사 결정을 혼자서 일방적으로 하고, 그걸 관철시키기 위해 남들이 모르게 은근슬쩍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인 것이다. 물론 K씨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건 아니다. 자기도 모르게, 늘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회사에서도, 교우관계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서서히 인식하고 있던 터라, 왜 자신이 자기도 모르게 이런 식으로 상황을 몰고 가는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왜 그럼 K씨는 자신의 생각을 남들에게 말해주지 않는 걸까? K씨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늘 바쁘셔서 K씨는 하루의 대부분을 형과 함께 지냈다. 형은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동생을 잘 돌보기는커녕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동생을 조종했으며, 동생의 요구를 잘 들어주지 않았다. 늘 형은 말을 바꾸기 일쑤였고, K가 원하는 게 있으면 형은 그것을 볼모로 이용해 K씨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시켰다. 부모님께 이런 상황을 알리려고도 했으나 형의 보복이 두려워서 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 오래 노출되다 보니 자신의 생각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고, 자신이 뭔가를 원한다는 것을 남들이 알면 그것을 철저히 좌절시키거나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한다는 강한 믿음이 생기게 되었고, 상대가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을 만들어서 남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끔 만들어 버리는 것이 K의 생존 전략이 되어버린 것이다.

“당신 말대로 공원은 다 그렇고 그래요. 내가 B 공원을 A 공원보다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니잖아요. 단지 나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미리 알고 싶고, 당신 생각이 바뀌었다는 걸 알고 싶을 뿐이에요.”라는 부인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아내는 나를 통제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거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갑자기 아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

K씨 같은 사람들을 수동적 공격성이 있다고 얘기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남들 모르게 은근슬쩍 뒤통수를 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다. 남들로부터 억압받고 공격을 당했지만 자신은 감히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표현할 수도, 공격을 할 수 없었던 무력감이 낳은 결과이다. 나는 결백한데 남들로부터 오해를 잘 사고 내 주장을 확실히 펴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보자. 혹시 나에게도 수동적 공격성이 있지는 않은지?

권혜경 박사
권혜경 박사는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뉴욕대학교에서 음악심리치료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이후 세계적인 정신분석연구소인 뉴욕의 National Institutes for Psychtherapies에서 정신분석가 과정을 마치고 뉴욕에서 정신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다. 오랜 기간 다양한 내담자들과 상담을 해오면서 거의 대부분의 심리적, 신체적 문제의 원인은 트라우마라는 것을 깨닫고 신경과학 근거기반의 트라우마 상담기법들을 하나씩 배우고 임상에 적용하면서 풀리지 않던 상담에 새로운 돌파구들을 마련하게 되었다. 권 박사가 받은 상담훈련은 정신분석과 예술심리치료외에도, 신경과학에 가반한 상담기법인 IFS, EMDR, Sensorimotor Psychotherapy, AEDP, TRE, Flash Technique, 다미주신경 이론 및 애착 이론 등이며, 현재 IFS Institutes 인증 IFS 수퍼바이저, EMDRIA 인증 EMDR 컨설턴트, Sensorimotor 심리치료연구소의 Advanced SP Practitioner, 세계적인 뉴욕의 정신분석연구소 National Institutes for Psychotherapies의 트라우마 프로그램 수퍼바이저로 상담사들을 교육하고 있다. 2014년 이후로 한국 정신건강전문가들에게 뇌과학에 바탕한 트라우마 상담기법들의 핵심을 망라한 통합적 트라우마 심리상담기법을 전수하고 있고, 단순히 이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닌, 배운 이론을 상담 현장에서 잘 쓸 수 있도록 '수퍼비전'이라는 상담사를 위한 컨설팅도 하고 있다. 싸이칼러지 코리아를 설립하여 세계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많은 트라우마 상담기법들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2022년에 권박사는 자신이 설립한 싸이칼러지 코리아를 통해 실력있는 상담사와 내담자를 연결해주는 온라인 화상 심리 상담 플랫폼인 카운슬러 코리아를 만들어 서비스 하고 있다. 권박사는 카운슬러 코리아의 총괄 임상 수퍼바이저이기도 하다. 권박사의 저서로는 '감정조절: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나를 지켜내는 방법'과 '심리톡톡 나를 만나는 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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