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블로그

강박증 상담: "나는 아빠의 강박증을 물려받고 싶지 않아요!"

권혜경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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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씨는 자기 관리에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한번 원칙을 세우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꼭 지킨다. 아침에 토마토 주스를 갈아 먹는 게 좋다는 얘기를 듣고 1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같이 아침에 직접 토마토 주스를 갈아 먹는 등 자신이 정해놓은 규칙은 꼭 지키려고 한다. 자신만의 규칙들이 너무 많아 그것들을 다 지킨다는 것이 피곤하고 다른 사람들과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걸 다 따라야 마음이 편하니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상황을 다 통제하면 되었기에 그다지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자 사사건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청소를 해도 순서가 있고, 걸레도 용도별로 나눠서 쓰고, 빨래를 갤 때는 정확히 각을 맞추고, 그릇도 특정한 방식으로 정리를 해야하는데 도대체 부인이 자신의 규칙을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지적할 때마다 부인은 알았다고 하지만 돌아서서는 잊어버린다. 그러니 본인이 다시 모든 것을 제대로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그 스트레스가 말도 못 한다.

부인은 S씨의 이런 강박적인 태도가 지긋지긋하다고 한다. 사람이 좀 융통성이 있어야지 어떻게 매번 똑같은 것을 반복하고 사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남편이 절도가 있고 깔끔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남편이 각을 맞춰 개어 놓은 이불이나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그릇들을 보면 숨이 확 막혀오고 답답해져서 다 흐트러뜨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S씨의 이런 강박적인 태도는 부부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밤에만, 특정 체위로만 부부관계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부인 입장에서는 정서를 무시하고 자신의 일방적인 규칙에 모든 것을 맞추려는 남편이 미운 게 당연하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면 색을 밝히는 여자 취급을 해서 심한 모욕감도 느낀다고 한다.

S씨는 완벽주의에 강박증이 있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모든 것들이 아버지가 정해 놓은 규칙에 따라 돌아갔고 어떤 상황에서도 이 규칙들이 지켜져야 했다. 어려서는 이런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자식과 부인보다 자신의 원칙을 더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아버지가 미워 반항도 해보고 아버지의 사람을 얻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했지만, 아버지의 강박증을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아버지의 강박증으로 인해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받은 S씨가 어떻게 또 강박증을 발전시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똑같은 상처를 주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심리상태를 가해자와의 동일시라고 하는데, 이는 무력한 피해자인 자신보다 강하고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 가해자와 자신을 동일시 해 내적인 안전감을 만들어 내는 방어기제이다. S씨는 아버지처럼 강박증을 만들어 나가면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상처를 똑같이 경험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그 처지가 아님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이것을 계속해서 확인하기 위해 이런 상황을 연출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상담 과정을 통해 알았다. 고통받는 것이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동시에 S씨에게는 항상 거리가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갈망으로, 자신이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이 되어, 아버지와 친밀감을 느끼고 싶은 간절한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강박증이 있는 사람은 본의 아니게 자녀와 배우자들을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심리 상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신의 원칙과 규칙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비수가 되어 꽂히는 일은 막아야 하므로.

권혜경 박사
권혜경 박사는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뉴욕대학교에서 음악심리치료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이후 세계적인 정신분석연구소인 뉴욕의 National Institutes for Psychtherapies에서 정신분석가 과정을 마치고 뉴욕에서 정신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다. 오랜 기간 다양한 내담자들과 상담을 해오면서 거의 대부분의 심리적, 신체적 문제의 원인은 트라우마라는 것을 깨닫고 신경과학 근거기반의 트라우마 상담기법들을 하나씩 배우고 임상에 적용하면서 풀리지 않던 상담에 새로운 돌파구들을 마련하게 되었다. 권 박사가 받은 상담훈련은 정신분석과 예술심리치료외에도, 신경과학에 가반한 상담기법인 IFS, EMDR, Sensorimotor Psychotherapy, AEDP, TRE, Flash Technique, 다미주신경 이론 및 애착 이론 등이며, 현재 IFS Institutes 인증 IFS 수퍼바이저, EMDRIA 인증 EMDR 컨설턴트, Sensorimotor 심리치료연구소의 Advanced SP Practitioner, 세계적인 뉴욕의 정신분석연구소 National Institutes for Psychotherapies의 트라우마 프로그램 수퍼바이저로 상담사들을 교육하고 있다. 2014년 이후로 한국 정신건강전문가들에게 뇌과학에 바탕한 트라우마 상담기법들의 핵심을 망라한 통합적 트라우마 심리상담기법을 전수하고 있고, 단순히 이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닌, 배운 이론을 상담 현장에서 잘 쓸 수 있도록 '수퍼비전'이라는 상담사를 위한 컨설팅도 하고 있다. 싸이칼러지 코리아를 설립하여 세계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많은 트라우마 상담기법들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2022년에 권박사는 자신이 설립한 싸이칼러지 코리아를 통해 실력있는 상담사와 내담자를 연결해주는 온라인 화상 심리 상담 플랫폼인 카운슬러 코리아를 만들어 서비스 하고 있다. 권박사는 카운슬러 코리아의 총괄 임상 수퍼바이저이기도 하다. 권박사의 저서로는 '감정조절: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나를 지켜내는 방법'과 '심리톡톡 나를 만나는 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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